이희명 개인전 <숲과 꿈과 덫>
2023.11.03-11.25
월-토: pm 1:00- 6:00 (일요일 휴관)
갤러리 호호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72, 2층
<전시서문>
서사라는 무대가 향하는 끝에서: 창작물이라는 숲, 꿈, 덫
콘노 유키
숲에도, 꿈에도, 그리고 덫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아직도 있다—태고의 삶, 충고와 경고를 전달해 주는 꿈, 속임수에 걸려 넘어진 자가 겪는 고난과 극복처럼 말이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신화는 물론, 영화, 드라마, 만화에 이르기까지, 숲과 꿈, 덫은 등장한다. 이 세 가지는 이야기 속에서 단순히 재현 대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만남과 서사를 가져다주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어떤 것—익숙하거나 낯선, 사람이나 사람 아닌 존재를 만나고, 사건이 전개된다.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봐야만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어떤 주인공이 숲을 걸어가다가… 어떤 주인공이 꿈에서 예언을 듣고… 사악한 존재에 의해 덫에 걸린 주인공이 애써 노력하는… 그런데 여기서 왜 주어는 ‘주인공’이어야만 할까? 바로, 숲, 꿈, 덫이라는 공간에서 만남과 서사를 부여받은 자는 모두 주인공이 되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애초에 계층도 역할 분담도 없이, 독자를 포함한 우리가 모두 주인공이 된다. 행복을 만나기도, 불행을 만나기도 하는 이들은, 그렇다고 당하기만 하지 않는다. 바로 서사의 흐름을 이끄는 자가 된다.
숲과 꿈, 덫의 공간에서 사건의 전개 과정에 발을 들이자마자 우리는 곧 동일시와 공감으로 끌리게 된다. 이때 세 공간은 창작물이라는 공간과 윤곽을 겹치게 된다. 말하자면 창작물 속 숲, 꿈, 덫은 단순히 모티프나 대상에 그치지 않고 창작물 자체를 숲, 꿈, 덫으로 만든다. 창작물이라는 숲, 꿈, 덫에서 감상자 모두는 조우와 서사적 흐름을 수용하고 나서 현실로 다시 돌아간다. 이희명의 개인전 《숲과 꿈과 덫》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숲이 그려진 창작물도 꿈에서 경험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창작물이라는 덫, 꿈, 숲이라 할 수 있다. 세 가지 방을 방문하면서, 감상자는 방마다 붙어 있는 주제는 물론, 작품을 만나 그 안에—작품이라는 방 안에서 작가를 만난다. 첫 번째 방에서는 숲속에서 방황하는 자아상이, 두 번째 방에는 꿈과 같이 환상적인 장면이, 그리고 세 번째 방에서는 조형적인 배치와 조합을 가진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덫이 그려진다. 혹자는 숲도, 꿈마저도, 심지어 덫까지도 허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비밀스러운 이 세 공간은 현실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마치 소설의 한 페이지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도 작가가 이 세 주제를 달고 작품에도 소재로 등장할 때, 그것은 허구로 치부되어 끝나지 않는다. 창작물 자체와 그 안에 들어간 소재의 윤곽이 겹친 이곳은 감상자가 조우하고 서사적 흐름 속에 빠져드는 경험을 선사하고, 그 경험을 ‘통(과)해서’ 다시 현실로 시선이 향하도록 한다.
이희명의 회화를 자세히 보다 보면, 첫 번째 방인 ‘숲’에서는 방황과 더불어 조우의 장면으로 그려진다. <The Siren>(2013-2023)처럼 두 인물이 그려지는 경우는 물론, <Melancholia>(2017-2022)처럼 한 인물 옆/밑에 얼굴이 더 그려지는 경우처럼, 다른 방향으로 보내는 시선이 한 작품 안에 담겨 있다. 이어서 두 번째 방인 ‘꿈’에서는 단순히 꿈 같은 장면이 아니라 <Dreamer>(2023)이나 <Night Walker>(2022-2023)처럼 어떤 행위를 하는 주체적인 인물의 모습이 강조되어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방인 ‘덫’에서는 <Thinker>(2022)처럼 생각하는 사람 머릿속에 여러 가지 동물이나 사물이 그려져 있거나, <깊은 집>(2013-2022)처럼 구조를 넘나드는 공간성이 그려진다. 여기까지 보면, 작가가 상정한 세 가지 주제가 각각 긍정적이고 또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방황은 곧 조우에 의해 방황하기도 하며, 꿈은 픽션이면서도 내 (무)의식대로 뚜렷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주체의 힘으로 움직이고, 덫은 그림의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 생각을 다시 다듬고 새로운 길로 이어 나가는 기회를 제공한다. 회화 작업이라는 창작물을 보는 사람은 세 키워드를 그려진 소재로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헤매고 만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디에서 이뤄지는 일들인가—바로 현실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한 페이지마다 펼치는 장면을 넘기고, 또 넘기다 보면, 끝이 온다. 그런데 여기서, 이 끝은 무엇의 끝이냐 하면 서사의 끝,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사라는 무대의 끝이고, 그 끝은 현실로 향한다. 작가가 말하는 “사회 안에서 내면을 감추고 살아가는 감정들을 표현한 자연과 자아와의 조우”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해 줄까?’라는 질문에 ‘우리를 현실로 전달해 준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창작물이라는 숲, 꿈, 그리고 덫을 경험한 우리는,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 숲에도, 꿈에도, 그리고 덫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아직도 있다—지금, 이 현실에.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회화 작업이라는 창작물은 기존/기성의 현실을 다시 보게 하는 숲이자 꿈, 그리고 덫으로 기능한다. 세 주제라는 공간, 이곳에서 전개되는 서사는 창작물에 우리를 잠시 머물게 한 뒤 다시 현실로 돌려보내 준다. 그렇다, 그림이 하나의 무대와도 같다면, 무대의 끝은 객석을 향한다. 여기에는 사람이 있고, 더는 유지되지 않은, 픽션이 깨진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무대의 끝이 사람을 향하고 우리 인간을 둘러싼 곳에 향한다면, 창작물이 있는 곳에서는 현실이 깨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현실에 살면서 이끌고 온 작가라는 한 사람의 서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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