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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Note

Artist Note (2008-2019)

<작가노트 2019- 식물성 언어>

마음과 마음이 켜켜이 쌓이고 부딪히며 흐르는 나날들은 여러 모양의 질감으로 그림에 새겨진다. 울퉁불퉁한 웃음일 수도, 무거운 비밀일 수도 있고, 바람에 흩어지는 농담일 수도, 매서운 무정의 그림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감정들은 단어로 모여지고 뭉쳐져 어느덧 지층과도 같은 문장이 되어버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의 초기 설치 작품에서부터 일관되게 관찰해 왔던 ‘식물성’과 ‘정서’ 사이에 맞닿아 있는 파장을 풀어보고자 하였다. 관객과의 순수한 공명에 대한 나의 고민들은, 서정성을 추구한 탐미적 기법으로 최근 작품에 나타나고 있다. 나의 소우주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별에 닿는 법은 무엇일까. 나의 불안과 희망, 감각과 상상력을 만인의 호수 위에 어떻게 하면 띄울 수 있을까. 관객에게 마음의 정화와 위로를 전하려 하였던 이와 같은 질문들이 모여져 현재의 언어들로 재구성 되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개인전에서 드로잉 작품을 처음 선보이게 되었다. 여러 겹의 색과 면을 중첩시키며 시간의 노동력을 쌓아올린 회화적 방법에서 탈피하여, 보다 날것의 맛을 탐닉하고 싶었던 시도의 결과물이다. 드로잉을 통해, 계단형 방식으로 구상력을 쌓아올렸던 경계에서 빠져나와, 튀어나오는 자극들의 창조성을 한층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회화와 설치 작업에서는 현재 나의 방향성 속에서 벌어지는 성장의 과정을 담아내려 하였다. 불온하거나 유쾌한 감정들의 다양한 층위를 식물과 인간 사이의 이미지 조합으로 그려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각적 상념들은, 나만의 외곽선을 넘어 수평적 호흡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성찰의 몸에서 피어났으리라. 나의 귀가 아닌 남의 문에 닿으려는 둥근 소리가 되기를. 그 소리가 향기가 되고, 풍경이 되어, 누군가의 시간 속 조각에 스며들기를.

오늘도 예술이 던지는 불완전한 문답을 그리며, 목소리의 줄기들을 꺼내어 본다.

 

 

<작가노트 2019- 서정의 살결>

 

이번 전시에서는 삶의 가장자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간과 마음의 압축 혹은 가벼이 넘기지 못했던 작은 구멍들의 함축을 자연의 이미지를 통하여 표현하였다. 삶의 바람이 만들어내는 ‘서정’ 이란 속살은, 과정과 과정을 넘나드는 문턱을 지나, 점차 소소한 향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변화시켰다. 지금의 나는 예술적 허세에 골몰했던 포물선을 지나, 다시 그 허세를 낮추는 지점에 서있다. 이제는 큰 것에서 엄청난 것이 탄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 은밀한 눈물과 소망이다. 그리고 그 작은 진심들이 모여, 나 자신의 치유와 행복을 넘어, 궁극적으로 누군가의 심장에 꽃과 살을 섞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과 인간 사이의 호흡은 바로 이러한 마음의 정화와 위로이다.

 

이번 전시는 산책 중에 나의 심장과 자연스럽게 조우한 정서적 산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꽃과 잎의 리듬, 새의 몸짓, 밤의 표정 등 자연의 주는 선물들과 나의 그림자 사이의 질문들은 아낌없이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 자연의 응축된 생명력과 홀로 대면하는 자화상을 대조시키며, 고독과 연민, 희망을 그려내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표면화하는 형식에 대해서는 언제나 고민하였다. 그 고민이란 것은 회화로 표현 되어지는 일종의 형식에 대한 고찰이었다. 방법론적 스케치에서 벗어나, 그림이 내포하는 텐션을 중요시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그림이 만들어내는 텐션, 즉 긴장감이란 화가가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작품에 대해 지배적, 권위적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 자체를 그림의 입장에서 동등하게 고민하여, 화가와 회화 사이의 장력, 그 긴장감이 작품에 여실히 나타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붓과 물감이 가는 데로 그리기도, 지우기도 하면서, 서사와 비서사의 접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을 때, 화가와 그림 사이에 어떠한 지배의식도 없는 대등한 생장이 팽팽히 유지될 때, 완성이라도 칭하였다.

 

화가와 그림이 수평적 관계 안에서 떠돌며, 즐기며 노니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삶의 모서리에서 탄생하는 측은한 마음들과 그 살결들을 담아내는 그릇은 인공적인 형태와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의 매듭으로 엮고 빚어야 그 시간의 빛깔을 온전히 담아낼 것이다.

 

하늘을 보라. 숲을 보라. 자연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아름답다. 그 자연스러움 앞에 우리의 자궁이 숨을 쉰다. 마음의 자락을 숨 쉬듯 그리는 것. 지금 나의 예술은 여기에서 춤춘다.

 

 

< 작가노트 2017 - 숨과 밤>

 

삶의 흐름 사이사이에 수많은 시간의 꽃들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삶의 물결 속에서 시간의 조각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때도 있는 반면, 격렬한 삶의 흐름 덕에 시간의 촉감마저도 못 느끼며 지나칠 때도 있고, 두 발을 땅에 딛는 것조차 힘에 겨워 시간의 검은 바다에 온 몸이 침윤될 때도 있다.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적이며 위선적인 일이다. 이런 여러 종류의 시간들을 내 안의 시계 속으로 몰아 버리고, 살기 위해 밥을 먹고 미소를 지으니 말이다. 그러다 가끔씩 진실의 밤이 찾아오는 날이면, 지나간 과오를 떠올리며 탁해진 그림자를 핥아대곤 한다. 멋쩍은 후회와 미련을 뱉어내는 밤의 손짓은 화가의 손길과 닮아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살기 위해 벌어지는 욕망의 덩어리인 ‘숨’과 관조적 성찰로 대변되는 ‘밤’ 사이에 벌어지는 간극을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최근의 회화 작업에서는 생명력의 집합체인 자연과 홀로 남겨진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미지의 조합과 충돌을 의도하며, 고독과 연민의 틈새에서 방황하는 자화상과 발자국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현실적 위선과 이상적 반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불협화음을 통해, 이기적인 태도로 점철되었던 삶에 대해 그린 일종의 반성문, 혹은 여러 가지 개별적 스토리들로 응축된 관찰 일기와도 같은 작품들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의 덩어리들에 대한 직면은 인간이기에 꼭 찾아야할 진심과 진실, 희망의 여정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삶과 죽음 사이에 끊임없이 실 뭉치가 나타난다. 어떠한 계기로 이것은 풀리는 듯도 하고, 다시 꼬이는 듯도 하다. 시간의 벽이 나도 모르게 움직이듯, 인생의 실은 어떠한 방향도 제시해 주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에 표류한 채, 일상적으로 숨을 쉬며 살아간다면, 순간순간 변하고 있는 마음의 생김새를 느끼지 못하고 방관만 하게 된다. 자신의 이름을 잃기 전에,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고 자신의 밤과 그림자에 대해 직면하는 것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지나가는 바람에 얹혀, 달에 얹혀, 자신의 껍질을 매만지며 또 다른 나를 맞이하는 것. 덧없는 것과 영원한 것 사이에서 숨과 밤이 흐른다.

 

 

 

 

< 작가노트 2015 - 뿔 >

 

이름 안에 구멍이 생기고

몸의 모서리는 지워진다.

지평선 사이의 틈.

심장에 돋아난 뿔.

 

멀리서 보았을 때 평화로운 것들이 가까이서 보았을 때 얼마나 치열하고 저열한 전쟁을 치루고 있는가.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다가가면 줄기마다 붙어있는 진드기들이 보일 것이다.

삶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선물하며, 무작위적인 풍경과 질문들로 나를 놀라게 한다. 이러한 삶 속에서 예술이란 거울은 행복의 물음표를 비추며, 이제껏 많은 형상과 문답을 쏟아냈다. 삶의 무게와 헛헛함이 더해질수록, 고통과 인내 혹은 허랑한 뿔이 자라났다. 나는 내면에 존재하는 이 뿔을 마주하며, 토해낸 에너지와 함께 예술의 가치를 매번 증명하려 하였다.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한 확신과 벽을 동시에 맞이하는 현재의 나, 현재의 뿔은 그만큼 허상과 진실 사이에서 방황하며 자라나고 있다.

이 뿔의 파편들은 나의 작품 속에서 조각나거나 왜곡된 인체의 형상들로 표면화 되어 나타난다. 특히 숲과 자연, 인간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삶과 죽음, 평화와 전쟁 등 양면적인 내용이 혼합된 인간 사회의 원초적 단면과 함께 자아의 음지를 대변하고자 하였다. 또한, 다른 이질적인 산물들과 자유롭게 결합하거나 해체되는 이미지의 변화를 통해, 화면 속에서 혼란한 긴장감과 미적인 자율성을 동시에 찾으려 하였다. 평온함으로 위장된 싸움이 계속되는 삶의 도화지처럼, 작품 속에서 이미지와 나는 동등한 시합을 이끌어내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유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나의 작품은 회색 둥지 속을 걷고 있는 인간의 그림자를 뜻한다. 이 그림자 속엔 외로움이란 꽃과, 허망한 유머의 날갯짓, 희망의 미세한 입김이 있다. 이 삶의 조형물들은 ‘뿔(The Horn)’ 이란 카테고리 안에서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향한 알몸의 아이들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아버지가 말을 잃었을 때 어린 왕자는 별에서 떨어졌다.

검은 달이 하얀 밤을 채우고 숲은 거짓말을 했다.

허공을 떠도는 이름들. 혀의 파편이 만들어낸 우스운 소리 상자.

적막의 눈 위에 까만 불이 켜지고 그림자의 뒷면이 찢어졌다.

새파란 침묵과 비명 사이에서 뿔은 자라났다.

 

 

 

 

< 작가노트 2012 - 목구멍 사이로 추락한 달 >


최근 회화를 통해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이성과 본능의 조화, 그리고 이 양극화의 조합으로써 생기는 일종의 호기심에 관한 것이다.

예전에 나는 하나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사물이나 오브제를 혼용한 설치작품이나, 주제에 충실한 이미지로 이루어진 회화작품을 작업하며 이성의 열매를 갈구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방식이 오히려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을 제한한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하나의 주제를 위해 모든 이미지들이 종속되어버린 작품에는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리하여 명백한 서술 구조의 탈피를 위해 추상화를 실험하였다. 확실한 외형으로 배경과 분리되었던 인물의 상투적인 묘사를 왜곡된 형상으로 표현하며, 그 불확실성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미지를 해체함으로써, 각각의 형상이 지닌 물질적 구조의 한계점을 이동시키며, 새로운 차원이 이끌어내는 설렘에 중독되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소통'이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추상화를 연구하다보니 내 안의 표현(즉 내 안의 감각, 감정)에만 갇혀버려서, 관객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작품이 상실한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자기 말만 하려는 대화는 재미없지 않은가.

이렇게 회화의 여러 가지 표현 방법 연구를 통해, 나는 이미지들 사이의 오류로 탄생하는 즐거움, 즉 ‘호기심 유발'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미지들이 방향을 잃을수록 오히려 작품이 내포하는 의미는 확장 되어갔다.

정답을 잃어버린 수수께끼는 그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소재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삶이 담아내는 ‘유동성의 재미'를 추구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 결과물들은 자연스럽게 ‘모호한 결론'을 가리킨다. 삶이란 것은 확정되는 것이 없기에 모든 존재의 경계는 불투명하며, 과정이 과정을 낳는 행위 안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수많은 오류 속에서 흥이 피어난다.



본능적 메아리와
지휘봉의 손짓으로 이루어진
오류가 남발하는

 

미완의 자작곡을 위하여!





< 작가노트 2010 >

“나는 이제 아무도 비웃을 수 없다.

너희를 비웃으며 행복한 나의 삶을 강조하던 연기도

불안의 가시밭길에서 갈가리 찢어졌다.

순백의 정원엔 부패의 냄새가 진동해

하얗던 나의 살결엔 구더기만 들끓는다.

손가락질 하던 나의 손끝도

문둥병에 걸려 닳아버렸다.

 

이제야 내가 아니라 우리다.

같은 냄새다.

사람이다.

 

그래서 갓 태어난 붉은 새싹 앞에선

이렇게나 부끄러운 것이다.” (2010. 7. 13다이어리 발췌)

 

영원을 꿈꿔왔던 나를 비웃듯 현실은 지나치게 순간적이며 다변적이었다.

쌓아 올린 유리잔들처럼 조그만 힘에도 나약하게 부서져 버릴 듯이.

어긋난 관계로 인한 인식의 틈이 생긴 후, 가족이나 친구, 훗날 나의 새로운 인연이 될 사람들도 ‘나의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었다. 사람에 대해 기대했던 마음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가린 채 그렇게 홀로 침잠되었다. 밀려드는 불안정은 소유욕만 부추겼고, 그로 인한 공허감은 더욱 거대해져 갔다. 화해와 공유, 희망 같은 이상화 없는 현실 안에 서있었다.

이러한 관계의 틈 사이로 인한 소통 불가, 그 외로움에 대한 시선이 내 작업의 출발점이다. 세상을 바라보았던 기존의 안정된 시선에서 벗어나 그것을 재해석 하고자 노력했다. 현실의 냉담함으로 비참하게 가려진 나약한 마음들을 표현하며, 평행선처럼 접점이 사라진 관계에 대해 가졌던 혼란과 착각을 작업으로 대변했다. 작업에서 보이는 불균형한 화면구성, 갈라진 신체, 왜곡된 얼굴의 이미지, 경계를 알 수 없는 무의식적 터치 등이 이것을 말해준다.

자유로울 때는 사방이 문이었지만, 이제 탈출구는 하나이며, 보이는 구멍마저 작아졌다.

과거에 억눌리고 미래에 짓밟히는 가혹한 현실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현실을 통해 가장 인간다운 본성이 발현되어 꿈틀거린다.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강력한 울림, 그 생생한 내면의 진동을 위해.

 

 

 

< 작가노트 2008 - 아름다운 혁명 >

나는 상위와 하위의 계급과 가치가 전복됨을 의미하는 이종의 하이브리드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하이브리드적 상상력은 수직적 경계를 허물고, 드넓은 수평위에 나를 안착시킨다. 현존하는 수직적 세계는 위와 아래를 향한 줄이 있고, 나란 존재는 줄을 잡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세계는 중력에 사로잡혀있는 난쟁이들의 천국이다.

그러나 수평적 세계는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난 열려있는 창조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이종과 상하, 권력과 계급의 가치에서 벗어난 세계,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다.

남성과 여성, 집단과 개인 같은 이원론으로 무장한 수직적 세계는 항상 타자를 만들어내며, 이러한 현실원칙에 따른 고통은 나만의 수평적 세계에서 기존 가치의 전복을 시도하며 해소된다.

적어도 내 스스로 세상에 대한 절대적인 관점보다 열린 세계로의 이행을 추구하며, 수직적 세계와 수평적 세계의 접점에서 무한한 교감을 이끌어 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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